포용성과 공동체를 만드는 네트워킹 - 2024년 10월 30일 대전
저는 아르헨티나의 예르만 호르헤(German Jorge)입니다. 제 나이는 만 52세이고, 직업은 사업가, 저의 아내 클라우디와 결혼해서 3명의 자녀를 두고 있습니다.
저는 EoC의 모태인 포콜라레운동을 젊었을 때부터 알고 참여하기 시작했는데, 이 운동 안에서는 서로 간의 사랑과 보편적인 형제애라는 그리스도교적인 가치를 실천하고자 노력하지요. 저는 고등학교를 마치고 나서, 원래 상업에 종사해온 집안 전통에 따라, 경제학을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대학의 교육 프로그램이 정치 경제학에 그 바탕을 둔 것이었고, 정치 경제학은 사람들의 개인적인 이익들 간의 투쟁으로서 경제 관계를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점이 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 관계는 제가 살고자 했던 것과는 정반대의 관계였고, 그래서 저는 경제학 대신 컴퓨터 공학을 공부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모두를 위한 경제, EoC》 프로젝트는 1991년에 태어났습니다. 저는 EoC를 제안하는 이야기를 처음 듣게 되었을 때, 이것이야말로 제 모든 걱정들에 대한 하나의 해답이라고 느꼈습니다. 그 순간부터 저는 EoC 기업이 바로 제가 하고 싶었던 일임을 깨달았습니다. 하지만 저는 ‘주는 문화’(the culture of giving)를 살아내는 것을 좀 더 구체적으로 해야 한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당시에는 젊었었고 아직 직장에 다니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제가 많은 것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이러한 나눔과 친교의 방식으로 이미 살아보고자 노력했고, 이 운동의 다른 젊은이들과 함께 우리가 갖고 있는 물건들을 나누어 쓰곤 했습니다. 예를 들면 옷가지 등을 나누어 입곤 했는데, 이에 관련된 저의 경험이 있습니다. 저는 부모님이 제 생일 때 선물로 사주신 가죽 잠바가 한 벌 있었는데, 무척 제 마음에 드는 잠바였기 때문에, 제가 다른 친구들한테 이 잠바를 보여주지 않았었어요. 이 잠바를 내어주고 싶지는 않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런데 마침내 이 잠바를 다른 친구들과 함께 나누어 입게 되었고, 제 생각으로는 이때가 바로 제가 ‘나눔과 친교’의 경제, EoC를 살아내는 첫 발걸음을 내딛었던 때가 아닐까 합니다. 그 경험이 저로 하여금 EoC라는 이 여정을 시작하게 해 준 계기였고, 저에게 가득한 기쁨을 준 체험이었습니다.
그 다음 해에 저는 이 운동에 속한 한 그룹의 젊은이들과 함께 지내면서 제 공부를 계속하기 위해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갔습니다. 저희는 모두 다섯 명의 젊은이들이었고, 서로 다른 지역 출신들이었습니다. 이 운동에 참여하는 한 가정이 저희에게 집 하나를 빌려 주었는데, 그 집은 수리할 것이 많아서 그분들이 아직 거주하고 있지 않은 집이었지만, 저희는 젊었기 때문에 그 집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저희 중에 단 한 명만이 일자리가 있었고, 다른 네 명은 아직 일을 찾고 있었기 때문에, 저희가 필요로 하는 것들을 구입할 돈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하느님께 청할 물건들의 목록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 목록을 작성했는데, 식탁 한 개, 의자 여섯 개 등등이 거기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 저희 중 한 명이 피아노가 필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그 친구한테 “너 미쳤구나! 우리한테는 지금 식탁도 없는데, 피아노가 필요하다고!”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친구가 “내가 피아니스트니까 피아노 공부하고 연습하는 데 필요해. 또 콘서트들도 준비해야 하고.”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아주 미심쩍어 하면서 마지못해 피아노를 목록에 포함시켜 주었습니다.
저희 집이 포콜라레운동에 속한 사람들의 모임 장소인 포콜라레 본부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저희 집에 찾아오곤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필요로 했던 물품들의 목록에 적혀 있던 것들을 이 운동의 공동체에서 저희에게 내어주곤 하면서, 차츰차츰 자연스럽게 그 목록이 줄어들어 갔습니다.
하루는 근처의 한 도시에 사는 젊은이 한 명이 와서, 그 목록에 피아노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나서 “우리 할아버지께서 사용하지 않으시는 피아노를 한 대 갖고 계셔.”라고 저희에게 이야기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트럭 한 대를 빌려서, 그 피아노를 가지러 갔습니다. 이처럼 저희가 필요로 했던 모든 것들이 재화의 공유, 곧 커뮤니온(communion)을 통해 도착했습니다. 피아노까지 말입니다! 제가 여러분께 이 경험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 경험이 제 마음 안에 크나큰 확신을 심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곧, 우리가 무언가를 필요로 할 때, 그 문제들은 커뮤니온(communion), 곧 나눔과 친교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해준 경험이었습니다.
몇 해 후, 저는 여러 곳에서 일을 하게 되었고, 2004년에 공부를 마치고 나서, 마침내 저의 EoC 기업인 디마코(DIMACO)를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 회사는 건축 자재들을 공급하는 회사입니다.
저희 기업에서, <모두를 위한 경제, EoC>를 살고자 노력했던 것은 바로 사람들을 첫자리에 두고 사람들을 돌보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사람들이란 직원들, 납품업자들, 고객들, 친구들 혹은 가난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자기 자신을 위해 최대한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에 기업에게 해로운 행위인 것이 아닙니다. 그뿐만 아니라, 오히려 특별한 방식으로 사업(business)의 가치를 높여주는 신뢰심과 소속감의 선순환을 창출해냅니다. 우리가 DIMACO에서 얻어낸 결실들을 통해서도 가늠해볼 수 있는 그 같은 성공은 바로 이 ‘주는 문화’(the culture of giving)를 살고자 하는 노력에 기인한다고 저는 진심으로 확신합니다.
제가 오늘 여러분께 소개해드리고자 하는 측면은 ‘네트워크를 만드는 것’에 대한 것입니다. 저는 이것을 저희 도시에서 가장 가난한 동네에서 저희가 해 나가고 있는 경험들 중에 하나를 통해 소개하고자 합니다. 저희에게는 이 네트워크야말로 저희가 진행하는 모든 활동들에서, 보다 효과적으로 빈곤에 맞서 나가기 위한 해답이 되었습니다.
처음에 저희가 목격했던 것들 중에 하나는 돈이 가난의 상황을 해결해 주지 못한 점입니다. 우리에게 (돈이라고 하는) 이 금전적 자원이 필요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저희의 경험에 따르면 이 ‘돈’이라고 하는 것은 덜 중요한 것들 중에 하나라는 점입니다. 물건들을 소비하지만, 상황은 그대로 남아 있곤 합니다. 상황들을 바꾸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그들의 행동들을 바꾸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행동이란 그들의 문화에 의해 결정됩니다. (어떤 젊은이들은 자신들의 부모나 조부모가 일하는 것을 본 적이 없습니다.) 이러한 문화는 특히 교육적 결핍과 보건적 결핍, 그리고 주거적, 가족적 결핍에 의해 제약을 받습니다.
저희가 일하고 있는 동네는 바리오 산 마르틴(Barrio San Martín)입니다. 저희는 이 동네를 볼카데로(VOLCADERO)라고 부르는데, 왜냐하면 이 동네가 이 도시의 쓰레기들, 폐품들의 짐을 내리거나 폐기하는 곳에 형성된 동네이기 때문입니다.
저희는 이 동네에서 몇 해 전부터, 그곳에서 일하는 다른 활동가들, NGO (비정부 시민 단체), 재단들, 성당 등과 함께, 어린이들을 위한 축구경기장을 짓는 것과 같은 다양한 활동들을 진행해왔습니다. 가장 체계적으로 조직된 것은 건설 노동자 양성 과정이었는데, 과정을 마치면 정부 산하 교육 위원회에서 발급하는 수료증을 받을 수 있었고, 이 수료증을 통해 해당 직종의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는 가능성도 주어졌습니다. 이 양성 과정의 초기에 많은 여성들이 등록을 해서 교육에 참여하였고, 여성들 자신들의 주택 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는 등의 상당히 유익한 결실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이 양성 과정에서는 참가자들이 공동체가 함께 사용하는 방 하나를 직접 만들었는데, 저희가 강사료와 도구 구입비, 자재비 등을 지불했을 뿐만 아니라, 과정을 수료한 사람들에게는 집에 화장실과 샤워 시설 하나를 실제로 만들어볼 수 있도록 필요한 자재들을 주기도 했습니다.
불행히도, (아르헨티나) 정부가 사회 복지 관련 계획들에 대한 지원 규모 등을 할당하는 과정에서 정치적인 변화로 인해, 이 프로젝트에 참여해오던 사람들이 국가에서 시행하는 다른 사업들을 맡게 되었고, 이 교육 과정에는 계속해서 참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 대응하기 위해 저희는 두 가지 활동을 전개하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는 화장실과 샤워 시설을 자체적으로 만들어보는 프로그램을 계속 진행하면서, 그 동네에서 이에 관심 있는 주민들 모두에게까지 프로그램을 확대하는 것이었습니다. 화장실과 샤워 시설은 단지 청결과 건강을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이 사람들이 학교나 직장 등에 어엿한 모습으로 갈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해 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느 초등학교 여자 교장 선생님이 저희에게 하신 말씀에 따르면, 어린이들에게 첫 수업 때 가르치는 것은 화장실과 샤워 시설 사용에 대한 것이었는데, 그 수업이 있기 전에는 아이들이 그냥 건물 바닥에 소변을 보곤 했기 때문이었다고 합니다.
필요한 자재들을 공급하기 위해, 저희는 저희의 여러 납품업체들과 고객들에게 참여를 독려했고, 이들은 이를 받아들여 창문들과 수도관들, 위생 시설 등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어느 날 자재들을 하역장에 보내는 일을 맡고 있는 디마코(DIMACO) 회사 직원 중의 한 사람이 자신의 친구들에게 화장실과 샤워 시설들에 대해 이야기를 했는데, 그 친구들은 그에게 무엇이 필요하냐고 물으면서 돕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그 시점에 아직 만들어놓지 못했던 열아홉 개 화장실과 샤워 시설에서 물을 데우기 위한 기계 장치를 구입하는 비용을, 각자 장치 하나씩 맡아서 내기로 했습니다.
저희가 실행한 또 다른 활동은 여러 기관이나 단체의 지도자들을 불러 모아, 서로 만남의 기회를 갖고, 이 동네에서 진행되는 여러 활동들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조정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저희는 이런 여러 활동들이 겹치거나 중복되어 자원이 낭비되는 경우들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서로 의견을 나누는 장場이 마련된 것에 대해 여러 기관장들과 단체장들은 매우 높이 평가했습니다. 가장 유익한 결실들 중에 하나는 각자 자신들이 알고 있는 내용들을 함께 공유하고, 서로 활동들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활동을 할 때, 각 기관이나 단체에서 서로 돌아가면서 식사 제공을 하기로 하는 것 등입니다. 이 모임을 통해 참석자들이 제안한 마지막 사항은 학교와 보건 센터, 치안 관련 활동 등을 네트워크 형식으로 조직해서 아이들이 학교를 안 다니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이러한 네트워킹은 해당 문제를 다양한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게 해 주고, 다양한 능력으로 그 해결 방법을 모색할 수 있게 해 줍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이 늘 쉽지만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우리처럼 항상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여러 생각들을 일단 접어 두고,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함께 협업하는 것에만 집중하자고 제안함으로써, 우리 사이에 신뢰의 관계들을 건설할 수 있게 되었고, 이를 통해 우리가 점점 더 효율적으로 문제에 대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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