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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EoC의 현재, 지나온 길과 전망: 사례 3




스테파니아: 모데나(Modena) Panaro(파나로) 사비냐노(Savignano)의 농업회사인 푼토 베르데 바이오(Punto Verde Bio)의 창립자인 루이지 카스틸리오니(Luigi Catiglioni)의 이야기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은 아들 엠마누엘레(Emmanuele)가 기업을 이어받았고 루이지는 2001년부터 인증 받은 오일과 와인을 생산하고 있는 농업협동조합인 로피아노(Loppiano) 4.0에서 새로운 기여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루이지의 회사에서 함께 진행했던 ‘이민자의 이주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 정착을 돕는 시스템 만들기(Fare sistema oltre accoglienza)' 프로젝트에서 루이지를 만났습니다. 취약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적 포용 일자리 프로그램입니다. 그때 저는 루이지의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았던 유숩을 만났습니다. 지금 현재 유숩은 전 직원의 인사책임자가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루이지가 어떻게 EoC 기업을 운영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게 되었는지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온 직원들과 어떻게 함께 살아가고 있는지 들어보겠습니다.


루이지 카스틸리오니: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나 제 마음 속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1991년에 EoC가 시작됐을 때부터였습니다. 이곳 사비냐노에서 리오넬로 본판티(Lionello Bonfanti)에게서 땅을 빌려 경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과수만 재배해서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즉시 점차적인 환경 보존 가치를 추구하는 바이오 농업을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그때까지 집약 농업(단위 면적당 수확량을 극대화하는 농업 방식)을 하고 있었지만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통해 창조 사업을 계속해 가고자 하시는데 우리가 그것을 파괴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품종 개선 시도와 항상 더 많은 양의 살충제 투입은 벌레들과 잡초들에 저항성이 생기게 해서 더 강한 균류들이 나타나 점점 더 피해를 막기가 어려워집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도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 당시에 바이오 농업 지원금이 있었기 때문에 단지 비즈니스적인 변화는 아니었다는 것을 말하고 싶습니다.

이렇게 변화가 시작되었고 1998년에서 1999년에 페루자(Perugia)의 로카 파올리나(Rocca Paolina)에서 열린 모임에서 우리 농산물을 소개하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는 아직 우리 제품이 생산되지 않아서 높은 품질의 다른 제품을 가지고 가서 반응을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때는 알지 못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모든 사건들이 연결돼 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적절한 환경을 찾아다녔고 결국 식품 산업에 맞는 환경을 찾아냈습니다. 적절한 장비도 구해야 했는데 식품 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은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아실 겁니다. 제 가족은 아내 안나마리아(AnnaMaria)와 5명의 자녀가 있어서 자금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앞서 들으신 다른 기업의 경험처럼 하느님의 섭리가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A4 용지 한 장에 간단한 사업계획을 써서 은행 임원에게 대출을 요청했습니다. 그는 은행장과 최고 임원과 함께 다시 오겠다고 했고 우리가 요청한 금액의 2배를 대출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장비를 구입했고 다른 모든 것들도 준비되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 지금 현재 상황을 말씀드리면 이탈리아 근로자들은 일하러 오지만 바로 그만둬서 과일 수확은 아프리카 노동자들만 하고 있습니다. 처음에 AMU에 두 사람을 요청했었는데 1명만 보내주었습니다. 7년 전쯤 막 18살이 된 유숩이 우리 회사에 도착해서 남쪽 방향을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저는 태양을 보면 알 수 있다고 답하면서 아프리카에 두고 온 어머니를 그리워한다는 것을 알고 울컥했습니다. 다음 날 외국인 노동자 지원센터에 접수하러 갔는데 갑자기 마지막 서명을 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되면 떠나왔던 시칠리아로 다시 돌아가야 하므로 여러 설득 과정을 거쳐서 우리와 함께 있게 됐고 그런 과정을 거쳐서 총 8명이 함께 하고 있습니다. 식물보호기능사 등 따기 어려운 자격증 공부를 할 수 있도록 도왔고 즉시 합격했습니다. 급여도 인상했고 쉽지 않았지만 아파트도 찾아 주었습니다. 유숩은 잘 적응했고 매우 만족했으며 열정적으로 일하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가나, 나이지리아, 감비아, 세네갈, 모로코에서 온 다른 직원들과 호흡이 잘 맞아 한 팀을 이루고 있습니다.

스테파니아가 말한 것처럼 얼마 전에 2세대로 기업을 넘겼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기업을 만든 사람에게는 쉽지 않죠. 자녀 다섯 중 둘은 농업경제학을 공부했는데 회계학을 공부한 넷째인 엠마누엘레(Emmanele)가 기업을 이어가겠다고 해서 자격 시험을 봤고 아내 끼아라(Chiara)와 꾸려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회사는 초기부터 즉시 제품의 높은 품질을 추구했습니다. 코르티나 담페초(Cortina d’Ampezzo), 카프리(Capri), 피렌체(Firenze) 지역의 바(bar) 등에서 우리 제품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스테파니아: 회사 전체가 가족적인 분위기에서 유숩을 맞이하면서 자격증 과정을 밟도록 하고 머물 집을 찾아주는 걸 보았습니다.


루이지: 예. 맞습니다. 책임을 맡고 있는 모로코인인 타이브도 이탈리아에서는 인정되지 않는 식품공학 학사 학위가 있는데 얼마 전에 저에게 이 회사가 가족적이어서 좋다고 했습니다. 무슬림이 대부분이고 여러 개신교 등 종교가 다 다르지만 한 가족을 이루고 있습니다. 뭔가 필요할 때, 어려운 일이 있을 때 항상 함께 해주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는 아내에게서 이혼을 당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고 유숩의 교통사고 때도 법적인 처리를 해주었습니다. 저에게 중요한 것은 직원들 마음의 평화입니다.


스테파니아: 항상 상호성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쪽에서만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에서 더 느긋한 삶의 방식도 배운다고 들었습니다. 기업에서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뿐 아니라 직원들의 문화와 생활양식도 배우면서 서로 주고받는다고 들었습니다.


루이지: 예. 사실입니다. 아프리카 문화는 우리 문화와는 확연히 다릅니다. 관점이 다르지만 결국에는 만나게 됩니다. 에밀리아(Emilia) 지방의 쉴 새 없이 바쁜 리듬과 다른 그들의 리듬으로 해냅니다. 그리고 매우 정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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