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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지노 브루니 교수와의 대화: 인간을 꽃피우는 노동(Bollate볼라테 교도소) 2



Andrea(안드레아): 안녕하세요. 교수님께서 성당 앞에서 구걸하던 사람을 만난 이야기를 쓰신 글을 읽고 감동을 받았습니다. 교수님은 구걸하던 사람에게 성당 가이드를 해볼 것을 제안하셨는데 그 사람이 가진 능력을 인정해 주신 것이지요. 그 사람의 빈곤으로 인해 드러나지 않았던 것이었죠. 그 글을 읽으면서 저는 그 빈곤이 교도소에 있는 우리 재소자들에게도 적용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재소자는 범죄를 저지른 후 윤리적 빈곤 속에 교도소에 갇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우리가 뭔가를 줄 수 있도록 허락하기를 기다리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사회에서는 선입견을 지니고 우리를 단지 우리가 저지른 범죄로만 인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제대로 보지 못합니다. 이런 빈곤의 상황을 어떻게 서로간의 성장의 기회로 바꿀 수 있을까요?


브루니 교수: 좋은 질문에 감사합니다. 제가 이탈리아의 Salerno(살레르노)에 있는 성당을 방문했을 때 구걸하던 한 외국인 청년에게 성당 가이드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는데 제가 성당을 돌아보고 나왔을 때 저한테 지하 성당에는 가보지 않았냐고 했고 성당의 역사와 예술 작품들에 대해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는 그것에 대해 사례를 했습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 싶었던 것은 주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빈곤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받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어떤 방법으로든 동등한 존엄을 지니고 상호적인 관계를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받기만 한다면 항상 돈 몇 푼 만을 지닌 가난한 사람으로 남게 됩니다.

그래서 여러분 같은 상황에서 노동은 존엄의 표현입니다. 제가 전문가는 아니지만 교도소에서는 사회 네트워크에서 떨어져 나가 단절되어 암흑 속에 빠진 느낌을 받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노동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이고 소통하는 언어입니다. 우리는 노동을 통해 말합니다. 서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서로 만나게 되며 한 도시에서 서로 알지 못하면서도 서로를 돕습니다. 지금 우리가 비대면으로 만나고 있는 데에도 많은 사람들의 노동이 필요합니다. 제가 있는 곳과 그곳 교도소의 전기선, 네트워크, 장비 유지 등 노동은 드러나지 않는 많은 상호간의 네트워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원하면서도 일하지 못하는 사람은 이 상호성의 밖에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한 사람을 그가 저지른 범죄로만 인식하는 것이 이해가 되는데 병에 걸린 사람도 심각한 병일 경우 그 병만이 그 사람을 온통 차지하게 됩니다. 여러분도 재소자일 뿐만이 아니라 여러 차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잊을 수 있습니다. 아마티아 센이라는 인도의 경제학자는 사람이 지닌 다양한 정체성이 오직 한 가지의 정체성으로 축소될 때 폭력이 발생한다고 했습니다.

노동은 한 단계 높은 자유로 삶을 풍성하게 해줍니다. 외부 사회의 평범한 조건에서보다 여러분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노동은 더 순수하며 진실되게 살게 합니다. 상호성의 네트워크는 존엄의 통로이며 받기만 하지 않고 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언어입니다. 상처 입었지만 무한한 존엄성은 남아 있습니다.

또한 노동은 존엄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노고를 동반합니다. 출산의 고통과도 같습니다.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그 순간에는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므로 노동을 로맨틱하게 포장하지도 않아야 하지만 고통과 착취 등으로 부정적으로만 보지도 않아야 합니다. 노동과의 바른 관계는 어느 순간에는 아주 아름다울 수 있고 어쩔 때는 매우 힘들다는 두 가지 면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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