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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익명의 너를 신뢰하라 - 위기에 처한 경제와 덕德

다음은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로마 룸사 대학 경제학과)가 이탈리아 가톨릭 일간지 《아베니레Avvenire》에 경제와 덕德에 대해 주제별로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책, <익명의 너를 신뢰하라> (이태리어 원본 제목은 Fidarsi di uno sconosciuto)의 전반적인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들어가는 말


창세기에서 처음으로 ‘매매賣買’에 관한 얘기가 나오는 부분은 묘지 양도에 관한 대목이다(창세 23,16 참조).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장사지내기 위해 막펠라의 동굴이 있는 땅을 이곳 히타이트 사람들로부터 사들인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 전체를 영원한 '소유'로 주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의 목소리를 듣고 성실하게 그 목소리를 따라간다. 아브라함은 약속받은 땅을 예견하고, 거기서 살고, 그곳을 사랑하게 되지만 자신의 소유가 된 첫 번째 땅은 단지 묘지 터였다는 사실은 아브라함의 성소聖召에 대해 우리에게 많은 것을 말해 준다. 이는 모든 성소聖召의 진정한 본질로서, 대가나 보상을 바라지 않는 성소의 무상성無償性을 드높게 표현해 준다.


아브라함과 땅 주인 에프론 사이에서 오갔던 ’경제‘에 관한 대화는 상징으로 가득하다. 곧, 경제 거래란 사람 사이의 만남을 수반하며 인간다운 만남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본주의 논리는 세상을 하나의 초대형 마트로 변형시킴으로써 사람도, 만남도, 말도, 예의도 없고, 상대방의 얼굴도 알아보지 못하는 곳으로 만들어 놓았다.


아브라함이 사용했던 사고파는 ‘계약’이, 야곱에 이르러서는 형 에사우한테서 맏아들 권리를 사들이며 ‘불콩죽 한 그릇’과 맞바꾸는 형태로 이행된다. “이렇게 에사우는 맏아들 권리를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창세 25,34) 아브라함은 아내 사라를 묻을 땅을 귀하게 여겼고 거금을 지불했는데, 에사우는 아주 하찮은 것에 만족해했고, 너무 헐값에 장자권을 팔아넘긴다. 과거나 지금이나 가격은 물건이 지닌 가치에 걸맞은 것이어야 한다. 터무니없이 높은 가격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생존에 필요한 것조차 가질 수 없어 고통을 받아왔고, 턱없이 낮은 가격 때문에도 고통을 받고 있다. 원자재나 물이나 음식이 ‘죽 한 사발’의 가치도 안 되는 가격으로 매매되고 있는 것이다. 이기적이고 근시안적인 시각과 투기投機의 결과로 값이 매겨지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를 끝내면서, 수많은 이주민들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의 나라에서 살다가 지금도 죽어가는 사람들, 아브라함은 바로 이들을 위해서도 막펠라의 묘 터를 샀다. 이 터는 바로 주인이 없는 땅, 약속의 땅을 위한 담보가 된다.


출처: https://eoc-rg.tistory.com/1 [EoC 독서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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