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요약] 익명의 너를 신뢰하라 - 위기에 처한 경제와 덕德 1

다음은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로마 룸사 대학 경제학과)가 이탈리아 가톨릭 일간지 《아베니레Avvenire》에 경제와 덕德에 대해 주제별로 기고했던 글들을 모아 엮은 책, <익명의 너를 신뢰하라> (이태리어 원본 제목은 Fidarsi di uno sconosciuto)의 전반적인 내용을 요약한 것입니다.


제1장 믿음 _ 지붕을 뚫다


각 사람의 내면에는 <저 너머>를 향해 열려 있는 <창>이 있다. 이 창은 우리가 우리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볼 때, 더 이상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것 같은 경우에도, 거기에 그대로 남아 있는 작은 틈새와도 같다. 믿음이라는 말은 인간과 관련해서 참으로 거대한 말이기에 또한 경제에 관련된 말이기도 하다. 유럽에서 경제와 시민사회의 발전 과정은 곧 믿음의 발전 과정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믿음의 역사이다. 믿음은 시민들 사이를 엮어 주고, 세대 간을 이어 주는 줄(라틴어로 fides)과도 같다. 믿음이 없다면, 세상의 지평을 바라보는 대신, 집이나 사무실의 천장天障만을 바라보는 셈이다. 집이나 사무실의 천장은, ‘인간’이라고 하는, 무한을 갈망하는 존재에게는 너무도 낮은 곳이다.


인간은 움막을 짓고 살던 시대와 누라게nuraghe 시대부터 집 꼭대기에 구멍을 뚫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이는 불을 피울 때 연기가 빠져나가도록 하기 위해서일뿐만 아니라, 인간이 자기 집보다 더 높은 하늘을 바라보고자 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처럼 우리를 고양高揚해 주는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이 부재不在하는 곳에서는, 그저 TV에서 보여주는 풍경들이나 가상의 하늘만을 어쩔 수 없이 바라보아야 한다.


‘믿음’의 정반대 개념은 언제나 ‘우상숭배’였다. 우상숭배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의 태도가 아니라, 너무 많은 것들을 믿는 사람들, 그것도 거짓되고 조작된 것들을 믿는 사람들의 태도이다.


‘피데스fides-믿음’은 거래가 시작되었을 때도 근본적 역할을 함으로써 시장의 탄생에도 필수적인 요소였다. ‘믿음’은 모든 시장경제의 기본이 되는, “내가 모르는 사람을 왜 믿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응답함으로써, 대규모 상업 거래의 바탕이 되었다. 유럽에서 경제 행위가 시작되고 있던 여명기에, 곧 상인들이 이 도시 저 도시로 옮겨 다니거나 유럽의 큰 강줄기를 따라 형성되었던 장場터에서 서로 만나곤 했을 당시에는, 아직 사법 체계와 재판 절차, 제재 규정이 아주 취약했고, 종종 전무全無하기도 했다.


따라서 당시의 복합적이고, 위험성이 따르고, 오래 걸리고, 비용이 많이 드는 상거래에서는 진정 상대를 믿어야만 했다. 상대편도 양심적으로 자신이 해야 할 몫을 제대로 하리라, 또 제대로 납품하리라고 믿고 들어가는 신뢰야말로 ‘믿음’이 주는 중요한 보증이었다. 모르는 사람을 믿을 수 있었던 것은, 깊이 따지고 보면 그 상대편도 사실 전혀 모르는 사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당시 유럽에서는 상대편도 나처럼 그리스도인으로서 같은 신앙을 갖고 있고 그 신앙에 충실한 사람이기에, 나도 그를 신뢰할 수 있다는 믿음이 가능했다.


이처럼 피데스fides(믿음, 신뢰, 미더움)로 인해 거대한 유럽 대륙은 페리클레스 시대에 융성했던 그리스의 폴리스polis와 같은 공동체를 형성하여, 혈족의 울타리를 넘어 물물교환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필리아philia를 이루었다. 그 폴리스가 이제는 어마어마한 규모로 훨씬 더 광범위해졌고, 폴리스에서 매우 넓게 확장된 시장은 부富를 배가해 주었고, 상업적, 사회문화적, 종교적 만남도 더욱더 늘어나도록 해 주었다.


믿음은 신뢰를 낳았고, 신뢰는 시장과 부富를 낳았다. 유럽은 바로 이 피데스fides-신뢰-끈-믿는 것-신용이 낳은 결실이다. 첫 번째 피데스는 ‘인간관계’의 재화, 곧 관계재關係財, relational goods였다. 이런 경험은 악용될 수도 있는 위험이 따르기에 내재적內在的으로 취약하고 상처받기 쉬운 점이 있기는 하지만, 이 점 때문에 인간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라는 종교가 만들어낸 믿음은 더 이상 이 같은 인간관계 면에서의 신뢰와 당사자 개인의 신뢰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경제적 관계에서 개성과 인격을 앗아가는 그 과정이 시작되었기 때문이었다. 이 같은 경제 관계의 비인격화 과정은 그 이후 점차 자라나, 결국 우리 시대에 와서 최근의 경제 위기가 글자 그대로 ‘폭발’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경제 위기를 부른 원인의 상당 부분은, 신뢰에 바탕을 둔 인간관계와는 너무도 동떨어진 금융 시스템, 곧 경제적 재화를 창출해 주는 그 신뢰의 인간관계들과는 무관한 금융 시스템을 구축했던 데에 있다.


그리하여 어떤 기업이 건실하나 어려움에 처해 대출을 신청하는 경우에도, 자본주의 시스템을 따르는 은행이라면, 너무도 자주 그리고 점점 더, 신용장도, 사람들 간의 만남도 없이, 그저 컴퓨터 시스템의 알고리듬algorithm에서 나온 대출심사 결과 수치數値에 따라서만 응답하곤 하며, 이로써 비인간적인 응답 방식이 되고 만다.


우리 시대의 경제 위기가 우리에게 주고 있는 메시지는 우리가 다시 예전처럼 서로 만나야 하고, 사람들을 신뢰해야 하며 그들의 취약성까지도 신뢰해야 한다는 점이다. 경제와 금융 거래에서 상대편의 얼굴을 대면하는 만남의 기회를 잃어버리면, 이 같은 거래는 비인간적인 지점들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 각자가 자기 영역에서부터 시작하여 모든 차원에서 피데스fides를 다시 찾고 활성화하지 않는다면, 그 어떤 전략이나 그 어떤 정부도 진정 우리를 구하지는 못할 것이다.


바로 이 믿음이 지금도 계속해서 이례적인 일을 해내고 있는 인간성과 경제, 기업의 높디높은 정상에로 도달할 수 있는 길을 열어 준다. 충실한 사람들은 공동선共同善을 위해, 또한 지구가 아름다워지도록 하기 위해 참으로 중요한 존재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사람들이야말로 모든 ‘위기’를 극복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사람들이다. 충실한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더 넓은 지평을 열어주고, 인류 공동의 집 천장에 구멍을 뚫어 더 높은 하늘을 보여줄 줄 알기 때문이다.

출처: https://eoc-rg.tistory.com/2 [EoC 독서모임]

RECENT POSTS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