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경제, 그 이름은 ‘나눔과 친교’(Communion)
루이지노 브루니(Luigino Bruni) 글
2019년 12월 24일
베들레헴의 마구간에는 경제가 많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아기가 하느님의 말씀이 되게 한, 신비롭고도 거룩한 유익함의 경제, 그러면서도 인간적인 유익함의 경제, 곧 ‘구원의 경제’의 가장 강렬한 이미지가 존재합니다.
그곳에는 노동자들(목동들)도 있습니다. 목수인 요셉이 있고, 마구간의 동물들이 있습니다. 동물들은 그 고대의 경제에서는 첫 번째 생산 요소였습니다. 그곳에는 살림의 경제, 즉 첫 번째 인간관계들로 이루어진 경제를 알고 있던 한 젊은 여성, 곧 마리아가 있습니다.
그 구유를 둘러싸고 돈의 경제와 하늘나라의 경제가 대조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 대조는 장차 예수의 가르침에서 끊임없이 등장하게 될 요소입니다. 여관들, 다시 말해서 베들레헴의 기업들은 그 해산을 위해 내줄 ‘공간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반면에 베들레헴 백성들 가운데 한 가정, 아마도 한 사람이 유일하게 한 공간을 내줄 수 있었으니, 그곳은 마구간이었습니다. 성탄의 경제는 ‘나눔과 친교’였습니다. 어떤 특정 경제에는 그럴 공간이 없습니다. 모든 공간들이 이미 다 예약이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경제가 하나의 과정을 촉진하기 시작했습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에 대해 이미 자신의 첫 교황 권고인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에서 “시간은 공간보다 위대합니다. 따라서 과정을 활성화할 줄 알아야 하고, 권력의 공간들을 차지하지 않아야 합니다.”라고 언급한 바 있다.
공간의 경제와 과정의 경제, 프란치스코의 경제와 베르나르도네(Bernardone)* 의 경제, 그 아기의 헐벗음과 아씨시의 가난뱅이(성 프란치스코)의 헐벗음.
* 아씨시의 부유한 포목상이었던 피에트로 디 베르나르도네(Pietro di Bernadone). 성 프란치스코의 생부(生父, 친아버지). 아들 프란치스코(1182년-1226년)가 폐허가 된 성 다미아노 성당에서 기도하던 중 “프란치스코야, 가서 허물어져 가는 나의 집을 고쳐 세워라.”라는 계시의 목소리를 듣고, 아버지의 가게에서 물건을 내다 팔아 성당을 수리하려고 하자, 베르나르도네는 분노해 아들을 작은 방에 가두었고, 아씨시의 주교 앞에서 아들이 재산 상속권을 포기하도록 강요하기에 이르렀다. 이에 프란치스코는 입고 있던 옷까지 모두 벗어 아버지에게 넘겨주고 알몸이 되어 가난한 삶을 선택했다. [가톨릭 성인전 등 참고]
‘베르나르도네의 경제’는 당시 돈의 논리를 추구하던 아버지 베르나르도네의 경제관을 가난한 이들과의 나눔과 친교를 추구하던 ‘프란치스코의 경제관’과 대조해서 저자 루이지노 브루니가 표현한 말이다.
우리의 세상을 바라보노라면, 오늘날 크리스마스 사업을 모든 공휴일들 평일에 운영하는 경제는 베들레헴 마구간의 경제도 프란치스코의 경제도 아니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이윤이 계속 승리를 거두고 있고, 선물은 계속 헐벗은 상태로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도 어린이들의 헐벗음과 가난한 이들의 헐벗음 앞에서,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경제는 어떤 경제인지 말해야 합니다. 성탄은 매년 우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어느 쪽에 있나요? 당신의 경제는 어떤 경제인가요?”라고.
성탄 축하드립니다! 그리고 선한 경제를 축원합니다.
L.B. (루이지노 브루니)
이태리어 원본 기사
http://edc-online.org/it/eventi-e-news/news/news-internazionali/82-varie/15658-l-economia-del-natale-si-chiama-comunione.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