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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 인간적 관계에 바탕한 시민경제가 행복 생산

[제7회 아시아미래포럼] 기조강연 나설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 인터뷰

"다른 이들을 먼저 행복하게 하라. 인간적 관계에 바탕한 시민경제가 행복 생산" 시민경제학자 브루니 교수 이메일 인터뷰 (한겨레 1면, 9면, 2016년 10월 31일 월요일)

시민경제 주창하는 행복경제학자 “다른 이들을 먼저 행복하게 하라” “좋은 삶과 행복은 타인과의 관계에 의존” “시민 참여와 정서 관계, 우정이 행복 샘물” “한국 행복지수 낮아…당면과제는 행복”

“우리는 ‘기쁨 없는 경제’에 살고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잊고 사는 것들이 정작 중요하다. 즉 신뢰와 우정, 정서적 인간관계에 기초한 시민경제가 행복을 생산한다.”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이탈리아 로마 룸사대·시민경제학)는 지난 10월초 <한겨레>와 한 전자우편 인터뷰에서 “행복의 비밀은 시민경제에 있다”고 말했다. 오는 11월23일, 2016 한겨레 아시아미래포럼(주제: “성장을 넘어, 더불어 행복을 찾아서”)의 문을 여는 브루니의 기조강연은 ‘원할 만한 진정한 행복’을 둘러싸고 우리 자신의 삶과 사회를 차분하게 돌아보는 사색의 시간이 될 것이다. 행복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개인의 주관적 만족감을 넘어 ‘좋은 삶’이어야 한다는 얘기다.

그는 “시장 ‘경제’가 좋다고 해서, 시장 ‘사회’가 좋은 건 아니다. 행복은 시민참여와 인간관계에 기반한 시민경제에 있다”며 “여러 국제 행복조사지표들을 볼 때 한국의 당면과제는 행복”이라고 말했다. 시장경제활동 안에서 ‘더불어 시민행복’은 어떻게 가능할까? 그는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하지 않고서는 자신도 행복할 수 없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 고양에 시간을 더 쓸 때 우리는 더 행복해진다”며 선량한 주민으로 다 같이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사회·경제의 정책과 제도를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을 풍요롭게 하면서 다른 사람 역시 풍요롭게 하는 것, 함께 행복해지는 것이 필요하다”며 “행복하지 못한 이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 자신도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행복의 비밀’은 나와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다양한 분야의 다른 사람들에 있으며, 바로 그들이 행복 샘물을 만들어내는 원천이라는 것이다.

■행복의 역설, 열망의 쳇바퀴 개인은 좀더 많은 돈을 벌고 큰 집을 사고 멋진 자동차를 몰면서 자신이 더 행복해졌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행복은 소득이 더 적고 더 작은 집에 살면서 싸구려 자동차를 몰고 다니는 누군가가 존재하지 않으면 느낄 수 없다. 소득·소비를 통해 추구하는 행복에는 남들과의 비교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브루니 교수에 따르면, 모든 사람의 전체 소득이 늘어나면 자기 소득 증가가 가져온 행복의 3분의 1이 사라지고 만다. 그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남의 재산을 부러워하는 사람들을 필요로 한다. 즉 자기가 가진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남의 눈에 띄고 드러내기 위해 항상 최신 상품만을 찾게 만든다”며 “남들과 ‘소통’하는 왜곡된 방법으로 새 자동차, 새 스마트폰을 구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소비지출은 마치 모든 국가가 벌이는 군비경쟁과 유사하다. “폭탄 구입에 쓰는 돈을 줄이면 다른 용도의 지출을 늘릴 수 있겠지만, 그것은 모두가 다 같이 그렇게 할 때만 가능한 것이다.” 저 유명한 ‘이스털린의 역설’이 말해주듯, 소득과 부의 증가가 행복에 주는 효과는 일시적일 뿐이다. 지속되지 않는다. 그는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에서 소득·소비에서의 행복은 스스로를 자기 기만의 희생자로 만든다고까지 말한다. “신발 한 켤레, 파스타 한 그릇, 거품욕조, 자동차 같은 일반 재화는 단기간에 즉각적인 자극과 유쾌한 감각을 주지만 그 만족감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다. 이런 상품은 사용에 따라 효용이 급속히 줄어들고 사람들은 다시 싫증을 낸다. 새 물건을 사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생긴다. 의존도 일으킨다. 즉 어제 느낀 만큼 기쁨을 느끼려면 오늘은 더 많은 상품을 소비해야 한다.” 더 높아진 소득수준에 다시 적응하면서 행복감이 원래 수준으로 돌아가고 마는 일종의 ‘열망의 쳇바퀴’다. 여기서 소득이 주는 행복은 흡사, 달리고 있지만 늘 제자리인 러닝머신과 같다. 다른 사람들의 소득도 러닝머신 위에서 자기의 소득·소비와 함께 달리고 있다는 얘기다. ‘행복의 역설’이다. “이런 소비생활은 우리의 창의력을 감소시킨다. 행복의 거대한 발전기라고 할 수 있는 자연과의 접촉, 예술문화활동에서부터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빼앗아간다.” ■행복을 생산하는 시민경제 “행복은 본질적으로 ‘인간관계’의 문제다. 유복한 삶은 시민적이며, 깊은 인간관계를 필요로 한다.” 브루니 교수가 말하는 바람직한 행복의 요체는 이 한마디로 집약된다. 행복은 구조적으로 타인과의 관계에 의존한다는 얘기다. “전통적인 서양 철학도 유교도 ‘사람은 행복하기 위해 친구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혼자서 행복할 수 없다. 외로움·고독, 다른 사람과의 관계와 상호성의 부족, 그것은 세상에서 ‘상처’라는 형태로 드러난다.” 물론 여기서 ‘관계’는 시장에서의 거래·교환계약을 뜻하는 게 아니다. “자본주의의 헛된 유토피아는 경제적 부유함이 친구를 대체할 수 있고 소득이 사회적 관계보다 더 중요하고, 심지어 시장에서 친구를 살 수 있다고까지 우리를 설득시키려 한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이 여러 행복 연구에서 점점 분명히 밝혀지고 있다. 사회와 가족에서의 인간적·정서적 관계가 행복을 좌우하는 주요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가 설파하는 관계, 즉 시민적 참여와 헌신·사랑·우정은 어떻게 일상 삶에서 행복을 만들어내는 것일까? 그 한복판에는 이른바 ‘관계 재화’가 있다. “우리의 일에 대해 생각해보자. 만일 한 팀에서 일하는 동료들의 마음이 원만하게 서로 잘 맞으면 서로 협력할 수 있고, 이 팀은 ‘관계형’ 자산 혹은 자본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생산성과 창의성도 더 높고 효율적이다.” 이런 관계 재화는 생산뿐 아니라 소비에서도 행복을 생산한다. “회사에서 동료들과의 좋은 관계는 나를 채워주고 행복하게 해준다. 맛있는 점심을 먹거나 좋아하는 옷을 살 때 오는 만족감과 같은 것이다.”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나 웃으며 출근할 때 높아지는 ‘삶의 질’이다. “한 사람은 사람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다. 좋은 정치는 보이지 않는 정치이듯, 여기서 관계가 주는 행복은 ‘보이지 않는, 진정한 행복’이다. ■혼자 고독한, 궁핍한 삶 우리 대부분은 시장 일반 재화보다 관계 재화를 비교적 더 적게 소비하려고 한다. 그러나 일반 상품은 시간이 흐르면 지겨워지기 십상이다. 반면 사람들 사이의 깊은 관계와 음악·책·영화 등 문화활동에 기초한 관계 재화는 사용할수록 또 오래될수록 오히려 효용이 늘어난다. “이미 읽은 책이 책꽂이에 꽂혀 있는 걸 보면 나는 항상 기쁘다. 행복의 관점에서 볼 때 시장에서 판매·구매하는 재화들은 시장에서 살 수 없는 재화, 즉 대가 없는 호혜의 관계 재화들보다 덜 중요하다. 이는 개인이나 국가가 어느 정도 경제적 여유를 가졌을 경우에도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중요한 사실이다.” 그는 우리가 생산·소비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않고 그 대신에 사회적 관계를 형성하는 삶에 더 많은 시간을 쓰면 확실히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말한다. 시장은, 상품 구매가 마치 ‘행복 구입’인 양 우리를 현혹시키고 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과의 직접적인 만남을 피하면서 훨씬 더 쉽고 싼 대안으로 텔레비전 앞에 빠져 있다. 마치 우리가 친구와 함께 있는 것처럼 티브이(TV)가 우리를 속이는 것이다.” 그가 쓴 어느 논문은 세계 가치관 조사 결과를 흥미롭게 분석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을 보면, 집 안 티브이 시청시간과 노동시간이 동시에 증가하고 있는데 티브이 시청시간이 길수록 행복감이 낮아진다. 티브이 시청이 여가활동이란 점을 생각하면 언뜻 이상한 결과다. “우리는 티브이 수상기를 통해 손 한번 잡아 보지도 못한 수천명의 사람들과 채팅하면서 세상에 ‘고독하게’ 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시민행복의 조건과 구조 그가 주창하는, 관계에 기초한 ‘행복한 시민경제’는 그저 유토피아가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 상품경제 안에서 작동한다. “시민경제는 시장경제다. 시장이 중심 역할을 하지 않는 시민경제는 존재하지 않는다. 부와 소득의 중요성도 인정한다. 하지만 시민경제는 시장과 함께 다른 요소와 다른 원칙들을 필요로 한다.” 이 시민경제의 특징적인 기둥은 관계, 신뢰, 상호 지원 등 세 가지이다. “사람은 ‘서로 협력하는 종’으로, 나는 너에게 또 너는 나에게 행복을 생산해주는 관계는 ‘시민경제’에서 가능하다.” 혼자서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고, 상호적인 지원과 호의로 다른 이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좋은 삶’이라는 얘기다. 그가 말하는 다른 요소와 원칙은 대가 없는 상호적 호혜 제공, 국가 차원에서의 부의 재분배, 경제 정의 등이다. “대가 없는 호혜 제공 없이 오직 자기 이익에 기초한 시장 거래가 유일한 원리인 사회는 병들게 된다. 시장 ‘경제’가 좋다고 해서 시장 ‘사회’가 좋은 건 아니다. 행복은 찾지 않을 때 다가온다는 말이 있다. 행복해지기 위한 수단과 욕심만으로 우정을 구한다면, 즉 대가 없는 호혜를 실천하지 못한다면 결국 행복은 오지 않을 것이다. 물론 남이 나에게 호의를 베풀지 않을 때도 그 행복은 변하고 깨지기 쉽다.” 시민경제 안에서 비로소 개인의 행복은 사적이면서도 동시에 공적인 행복이 된다. ‘더 많은 부’가 가져다주는 개인적 행복은 취약하다. “사람들은 여전히 과도하게 일하고, 인간관계에는 지나치게 적은 시간만을 투자하고 있다. 그는 정서적으로 매우 궁핍하고 슬픈 인생을 보내게 될 것이다.” 대부분의 기쁨은 다른 사람들 역시 함께 누릴 때에만 진정한 기쁨이 된다. 그는 “사람들은 상점에서 이미 전부 만들어져 있는 물건들을 산다. 하지만 어떤 상점에서도 우정을 살 수는 없다”는 <어린왕자>의 한 구절을 인용했다. ■한국인의 행복 도전… 유엔 세계행복보고서를 보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한국의 행복지수는 국내총생산(GDP) 수준에 견줘 훨씬 낮은 편이다. 그에게도 놀라운 일일까? “한국의 행복지수가 제 생각보다 낮은 데 놀랐다. 좀 더 높을 거라고 짐작했다. 세계 최장 노동시간이나 경제성장 제일주의 등이 그 배경에 있는 것 같다. 한국이 당면하고 있는 큰 도전은 행복, 특히 다 함께 누릴 수 있는 진정한 시민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저성장 체제 아래 취업도 연애도 결혼도 포기하고 있는 암울한 한국 젊은이들은 어디서 행복을 발견할 수 있을까? “행복에는 심각하고 중요한 두 가지 구성 요소가 있다. 즉 우선 자기 분야에서의 전문성, 그리고 사회에서 사람들과 맺는 1차적 관계의 질이다. 젊은 사람이 교육을 통해 자기 전문분야를 갖지 못하면 자부심이 결핍되고 직업에서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기분이 항상 언짢고 불쾌감이 높을 수밖에 없다. 관계의 경우 여러 행복 조사 연구는 결혼한 사람일수록 미혼보다 대부분 더 행복하다고 보고한다. 특히 사회와 공동체에서 사람들과 맺는 관계의 삶은 행복의 가장 중요한 요소로 알려져 있다. 최근의 연구에 따르면 별거에 따른 불행은 실업이 주는 고통보다 평균 5배나 더 심각하고, 가족 상실에서 오는 우울증이 현대 사회가 겪는 고통의 가장 큰 원인이라고 한다. 이런 통계는, 우리가 소득보다 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우리 눈에 겉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 ‘관계 재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관계에서 만들어지는 이런 행복 재화는 부족할수록 점점 귀해진다.” ---------------------------------------------------------------------------------------------------------------------------------------

루이지노 브루니 누구인가?

관계 속 행복의 관점으로 경제학 재구성

선량한 덕성에 기초한 시민경제 주장

루이지노 브루니 교수(로마 룸사대·밀라노비코카대)는 올해 50살의 아직 젊은 경제학자다. ‘관계 속 행복’의 관점으로 경제학을 재구성하고 있는, 21세기 시민경제학과 행복경제학 분야의 권위있는 학자다. 경제철학과 윤리, 경제 사상사, 경제학의 사회성과 행복에 이르기까지 시민(참여)을 중심으로 경제학을 연구해오고 있다. 쓴 책으로 <21세기 시민경제학의 탄생>(공저), <경제학과 행복>(편저), <시장의 기원과 정신> 등이 있다.

그는 여러 저서에서 ‘행복’이란 주제에 경제학이 귀환해야 한다고 말한다. “1776년에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 이후 경제학의 전통은 복잡하고 난해한 부와 행복 간의 관계를 잊고 지냈다. 애덤 스미스의 목적은 국부의 성격과 기원을 밝히는 데 있었지만, 21세기 경제학 연구가 들여다봐야 할 또 하나의 목적은 국가(국민)의 행복에 영향을 주는 원인들에 대한 것이다.”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시민으로서의 덕성에 기초한 시민경제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대안모델로 연구해왔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다음과 같은 말을 자주 인용하는 까닭이다. “선천적으로 선량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함게 살 때 행복해진다. 친구나 착한 사람과 지내는 것이 낯선 사람이나 착하지 않은 사람과 지내는 것보다 좋다는 건 분명하다.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친구, 그리고 우정이 있는 삶이 필요하다. 가난해지거나 불행해졌을 때는 친구들이 유일한 피난처이다.”

그는 연구실의 학자를 넘어 실천적 활동가다. 천주교를 기반으로 서로간의 사랑과 모든 이의 일치를 지향하는 활동단체 ‘포콜라레’(Focolare·이탈리아말로 ‘벽난로’라는 뜻) 운동을 주도하고있다. 지난 5월 대한민국 국회에서, 시장 경제 안에서 상호성과 공동선을 추구하는 ‘모두를 위한 경제’(EoC·Economy of Communion)를 주제로 강연했다. 최근 출간된 그의 책 <숲과 나무: 인간적인 경제를 위한 열가지 이야기>는 이탈리아에서 ‘2016년 레스 마그나에(Res Magnae·위대한 성취를 이루었다는 뜻의 라틴어) 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조계완 한겨레경제사회연구원 동향분석센터장

원본 보기 : http://www.hani.co.kr/arti/economy/economy_general/768068.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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